[잡담] 비슷한 류의 질문이 많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봅니다.
신바람이박사안녕하세요 이박사입니다.
최근 들어 학생 연주자 분들 유입도 많은 것 같고 새로이 일렉기타 연주에 도전하시는 분들도 많은 거 같아서 옛날 처음 기타 배우던 생각도 나고 그러네요. (이러니까 제가 상당히 아재인거 같은 느낌이... ㅠㅠ)
제가 처음 기타를 배울 때가 거의 20년 전이니까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인터넷도 없었고 하이텔 / 나우누리도 전화 접속비 때문에 학교 컴퓨터 동아리에나 가야 접근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일기동 같은 게시판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영상 / 사운드 / 이미지 업로드가 없는 게시물 뿐이었기에 악보조차도 텍스트로 그려 올라오던 시기였죠. ㅎㅎ
시중에 판매하는 교재는 온통 일본 교재 그대로 번역해서 들어오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나마도 오역과 채보 오류로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죠. 능력자들은 MI 교재 카피본이나 레슨 비디오 같은거 구해서 보기도 했지만 당시 고등학생에 불과했던 저에게는 언어와 비용의 장벽으로 접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요.
그러다 보니 가진 장비가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서 그저 연주만 할 수 있으면 좋았던 시절이기도 하고, 정보가 없으니 혼자서 이것 저것 시도하면서 때로는 장비를 망가트리기도 하면서 시행착오로 배울 수 밖에 없었죠.
20년이 지난 지금은 서점에 가도 잘 번역된 교재가 넘치고 (이제 MI 교재도 한글화 되서 출간되니...), 유튜브에서 관련 단어만 검색을 해도 유명 프로들의 연주와 팁이 수 없이 쏟아지고, 장비들도 낙원 던전을 헤매며 눈탱이 맞을 위험 없이 인터넷으로 쉽게 구매 가능하며, 조금만 능력이 되면 국내에 들어오지 않는 장비와 자료들도 아마존의 힘을 빌릴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작금에 올라오는 질문들은 너무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불필요한 정보들을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조차도 정립이 안 되어 있는데 누가 무슨 페달이 좋다더라, 무슨 기타가 좋다더라, 무슨 앰프가 좋다더라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모든 장비를 다 서서 들어보고 판단할 수는 없기에 사용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나쁠 것이 없으나, 어느 게 더 좋아요? 페달보드와 멀티 중 고민입니다 XX 페달 어떤가요? 이런 질문들은 결국 주관적 의견이지 어떤 정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페달에서 칩이나 캐퍼시터 바꾼 것만으로도 소리가 달라짐을 알아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바뀐 소리가 내가 원하는 소리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사실 톤 메이킹은 일렉기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악기라는 관점에서는 듣는 귀를 열고, 연주할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의 기량을 키우는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요리로 치자면 듣는 귀는 맛을 볼 줄 아는 능력과 같고, 연주할 수 있는 기술은 요리 기술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비는 요리 재료와 같구요. 냉장고를 부탁해 라는 프로그램 보시면 유명 쉐프들이 연예인들 냉장고에 있는 일반적인 재료만 가지고 그럴싸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건 결국 쉐프들의 능력에서 기인합니다.
장비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저는 그보다 좋은 소리를 먼저 좀 더 많이 들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유명 연주자들이 연주한 음악을 많이 들으시고, 이런 톤은 어떻게 내는 걸까 고민하며 비슷한 컨셉의 장비로 접근해 보고, 안 되면 조금씩 장비도 바꿔 보고, 연주 방법도 바꿔보고, 맨날 쓰던 세팅도 과감하게 바꿔 보고, 이런 과정을 통해 배우면 여기서 댓글로 배우시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장비에 돈 투자하는 만큼 음악을 사서 듣고, 책을 사고,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러 가고 하시면서 음악적 소양을 길러 나가시길 바랍니다. 장비는 연주하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지 자동차 튜닝 동호회에서 쇼바 올리고 LED 단 것 자랑하는 것 마냥 커다랗게 부띠끄 페달들 올려 놓고 자랑하려고 갖는게 아니니까요. :)